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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22일
3월은 풍성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파로 구미를 당기는 영화들이 속속들이 개봉을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뮌헨’을 시작으로 ‘브로크백 마운틴’, ‘앙코르’ 그리고 ‘오만과 편견’을 통해서 문화적으로 아쉽지 않은 한 달을 보냈다. 이들 중 내가 ‘오만과 편견’에 대한 감상문을 써 내려가는 이유는 가장 훌륭했다기보다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거의 다 지니고 있다. 이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작품 수가 적기도 하지만, ‘제인 오스틴 북클럽’이라는 소설처럼 그녀의 작품 세계 자체에 대한 토론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게다가 한 때 전 세계적으로 ‘오스틴 붐’이 일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만과 편견’의 경우 내가 그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먼저 접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총 세 번에 걸쳐서 읽었는데, 그 때마다 새롭게 다가왔다. 처음 읽을 때는 단순히 쉽게 읽히는 사랑스러운 연애소설이었다. 두 번째에는 당당하고 지적인 여성상을 그린 작품으로 내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지침서였다. 최근에는 사람간의 관계를 유머러스하면서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것에 주목하여 읽었었다. 오스틴의 작품들은 워낙 인기가 있어 여러 번 영화화 혹은 드라마화 되었었다. 이번 개봉한 ‘오만과 편견’도 제작 단계부터 이슈화 되었다. 최고의 로맨틱 코메디를 제작하기로 유명한 영국의 워킹타이틀이 만들고 나탈리 포드만과 위노나 라이더를 합쳐놓은 듯한 키이라 나이틀리가 엘리자베스 역을 맡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개봉 후에는 미술, 의상 면에서 당시 그대로를 재연해 내었다는 찬사를 받았으며 배우들의 연기도 안정되었다는 평을 얻었다. ![]() 그러나 ‘오만과 편견’은 ‘오만’에 넘쳤다.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이 이 작품을 읽었다고 생각한 점에서 그러하다. 이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지적된 점인데 수백 쪽의 분량을 2시간 러닝 타임에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 급격한 화면 전환이나 인물에 대한 설명 부족은 관객들로 하여금 혼동을 주게 된다. 게다가 정적이고 섬세한 묘사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틴 풍 작품이 빠르게 전개되니 뭔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하였다. 유명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은 99%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을 받는다. (영화가 유명해져서 원작이 뜬 경우는 제외하자.) ‘오만과 편견’ 역시 여러 평을 보니 그런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 나도 동일한 ‘편견’을 갖지만 몇몇 장면은 원작과 차별화되어서 꽤 멋지게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그 중 하나를 꼽는다면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일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원작에서는 단체 산책을 하다가 뒤떨어진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영화에서는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남녀가 우연처럼 언덕에서 조회하는 것으로 그렸다. 아침 이슬이 내리고 뿌연 안개가 깔린 그 곳에서 둘이 얼굴을 맞대고 그 뒤로 해가 떠오르는 것은 매우 아름답고 신비로워 보였다. 앞서 말했듯이 제인 오스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만과 편견’은 작품 자체가 ‘오만과 편견’에 빠져있다. 사실 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관객들은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냉정하다. 원작을 읽었을 경우엔 영화의 스포일러를 모두 알고 들어가기 때문에 스토리 자체의 흥미나 반전요소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작품의 속도보다도 관객들이 앞서나가기 때문에 원하는 방식대로 이야기가 풀려나가지 않는다면 그 실망감은 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영화의 경우에는 다른 영화의 10배는 더 투자가 필요하고 10배는 더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명성만 믿고 평범한 영화를 만든다면 그건 관객을 기만하고 모독하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